▲ 금빛평생교육봉사단 충남도단장 홍욱기

옛날부터 가을은 등불을 가까이 하여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 더위를 핑계로 하여 책을 멀리한 것이 꽤 오래된 듯싶다. 이제 삽상한 가을 좋은 계절을 맞으며 다시 책을 잡아보기로 하고, 어떤 책부터 읽어 볼가 생각 끝에 신간 서적도 좋지만 지난날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감명 깊었던 책을 골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을듯하여 서재에 들어섰다.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을 살피는 순간 아주 쉽게 한 권의 책의 제목에 나의 눈길이 머물렀다. 그것은 미치 앨봄이 지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이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 책은 아마 10여 년 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큰 감명을 받았던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빼어드는 순간 그동안 나의 삶 속에 은연중 많은 영향을 끼쳐준 책이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되살피기 위하여 다시 한 번 더 읽기 시작하였다. 내용은 대학 교수인 ‘모리’선생님과 그의 제자 ‘미치’가 주고받는 대화식 강의의 실제 이야기이다.
‘모리’ 교수는 ‘루게릭’이라는 병으로 근육이 점차 굳어져가 서서히 죽게 되는 희귀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화요일마다 고맙게 찾아오는 사랑하는 제자 ‘미치’에게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의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토록 하며, 삶과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기 위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훈적 담론을 계속하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고 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 제자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선생님의 큰 사랑과 이해, 그리고 따뜻한 정에 목이 메어 선생님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제자의 모습, 이러한 사제 간의 아름다운 모습에 나도 그만 가슴이 뭉클해 옴을 느꼈다.
이제 나는 지면이 허락하는 안에서 이 책의 갈피갈피에 깃들어 있는 내용들을 주제별로 몇 곳만 살펴보기로 한다.
○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 : 담당 의사들은 앞으로 2년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모리 선생은 그보다 그 끝이 더 빨리 오리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리 선생은 이미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나오던 그날, 그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그냥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남은 짧은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유용하게 쓸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는 죽음만 기다리며 앓다가 그냥 떠나고 싶진 않았다. 또 죽어가는 것을 서럽거나 부끄럽게 여기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의 죽음을 삶의 중심이 될 프로젝트로 삼고 싶어 했다.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기왕이면 자신의 죽음을 대단히 가치 있는 일로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참을성 있게 생명이 삭으러드는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지켜보며 ‘삶과 죽음, 그 짧은 여정을 잇는 마지막 다리를 가치 있는 일로 채우며 걸어가리라.’ 결심하는 의연한 그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 건강하지만 그지없이 초라한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말았다.
○ 삶에 대한 단상 메모 : 모리 선생은 날로 쇠약해져서 이젠 남의 도움이 없이는 거동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음식을 씹는 것마저도 힘겨워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이란 말을 거부했다. 그의 아이디어 피뢰침은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그는 메모지, 서류철, 스크랩북 등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그때 메모해 나갔다. 매일매일 죽음의 그림자를 껴안고 견디며 쉼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단상을 써 내리어 갔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과거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너무 늦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등등의 그 때 그가 남긴 50여개의 단상 메모의 내용들은 그 후 많은 친구들과 동료 교수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위의 네 가지 글귀의 내용만으로도 지금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거울이 되어 주었다.
○ 진정으로 만족을 주는 삶 : “자네에게 진정으로 만족을 줄 수 있는 게 뭔지 아나?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야. 그리고,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야.”
모리 선생이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 미치에게 들려준 이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삶의 일상에 지쳐 그저 관성적으로 혹은 무의미하게 들어 넘기기 쉬운 말들이지만 우리들에게 ‘우리들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맞나? 를 다시 확인해 보는 경종의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스스로에게 만족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들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안다고 해서 늘 그렇게 살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그 여유란 시간이 많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는 힘과 노력에서 온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살필 때 이 책은 분명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여유를 찾아주고 관성적인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줄 것으로 확신된다.
지면 관계상 이 책의 편린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크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은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읽어본 분들이라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펼쳐보시면 새로운 가르침이 눈에 들어올 것으로 확신해 본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풍요로운 가을의 한복판을 아름답게 수놓아 꾸며 보시기를 감히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