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존호 태안우체국장

편지가 외롭다, 우표는 더 외롭다. 

서리 내린 새벽, 우두커니 서 있는 붉은 우체통은 외롭다. 편지가 그리우니 더 외롭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그리움도 더 강할 게다. 그립다 말을 하면 더 그리운 것이라서. 고은 선생님은 상화 시편의‘편지’라는 시에서 「 (…) 옛사람은 푸른 하늘 푸른 하늘이라 쓰고 아이고 아이고 라고 읽었다 / 나는 아내에게 푸른 하늘의 편지를 쓴다 / 무식하게 / 그리움이 외로움이라고 외로움이 그리움이라고 쓴다」라며 그리움을 외롭다 하셨다.

분명 그리움을 표현하는 매개 중 하나는 편지인데, 요즘 세상에, 요즘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고 있을까? 어쩌면 까마득한 추억이고 잃어버린 행복 중 하나일 게다. 펜팔을 하고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보내고, 밤 새워 쓰고 찢고 다시 쓰던 연애편지까지 그야말로 편지가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었던 때가 불과 60여 년 전 일인데도.

우정사업본부 우편 통계 편람을 보면, 국민 1인당 우편물 이용량이 작년에 95통이다. 2010년은 98통이었고. 2010년 같은 해 미국은 511통, 근대우편 창시국인 영국은 310통, 이웃한 일본이 155통이니 차이가 너무 많다. 그런데다가 100통이 채 못 되는 편지 중엔 세금 고지서와 카드대금, 통신요금 청구서 등이 대부분이고 개인끼리 오고간 편지는 1.6통에 불과하다. 이처럼 삭막해져가는 세태를 변명하는 이유로 무엇을 들어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나부터 편지를 쓴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한 달 전 아님 일 년 전? 일반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우표와 편지를 먹고 산 다해도 과언이 아닐 우체국 사람들은 어떨까. 집배원과 편지 그리고 우표는 우체국의 상징이자 생업의 달착지근한 뿌리인데도. 이래선 안된다싶은 마음에 10월에 태안우체국에서는 손 편지 쓰기를 해 보았다.70명 가족 중 65명이 참여했다. 소중한 이들인 부모님과 아내 또는 남편, 혹은 아이들에게 손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냈다. 편지 쓰는 것에 어색해하던 직원들도 편지를 받은 가족들이 좋아라하고 흐뭇해하는 반응에 다들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적어도 계절이 바뀔 때면 한 번씩 편지를 쓰자 해야겠다.

지금은 메일, 문자, 트위터나 카카오톡 등 의사소통 수단이 다양하다. 더구나 편지처럼 며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순진하게 편지만 써야한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편지만큼의 기다림과 편지만큼의 설렘과 편지만큼의 그리움을 어디에서 되찾아 올 것인가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편지를 쓴다는 게 그냥 마음먹어서 되는 건 아니다. 어떻게 써야할지 망설여지고 어느 때는 골치를 지끈거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펜으로 꼭꼭 눌러 쓴 손 편지가 아니라도 좋다. 쪽지도 좋고 컴퓨터로 써도 좋다. 언제 써야하는지 망설 일 것도 없다. 부부끼리 티격태격 한 후의 쪽지 편지는 어떨까.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면 계절마다 문안 엽서라도 보내면 어떨까. 화이트 데이엔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봉투 안에 사탕 몇 알 넣어 보내면 어떨까. 사랑해, 사랑해 라고만 써도 좋아 할 것이다. 그러기에 집배원들이 다정다감한 편지를 많이 배달해주는 세상을 꿈꾸는 내 입장에선 편지는 더욱 소중하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우표 사용량이 아주 미미해졌다는 것이다. 우표 사용량이 싱가포르 30%, 독일 20%, 캐나다 20%, 일본이 15%라는데, 우리나라는 작년 통상우편 46억 4000만 통 중 1억 3000만 통에 불과한 2.8%였다. 해마다 우표를 붙이는 비율도 줄고 있어서 2009년 3.5%, 2010년 3.1%, 그리고 작년은 더 줄었다. 이러다 보면 몇 년 후엔 우표 붙은 편지를 구경하는 것 마저 쉽지 않을 것 같아 매우 속상하다. 이런 형편에 또박또박 눌러 쓴 손 편지라니… 어쩜 천연기념물이 될 것 같다.

이제라도 우표가 가진 국가적 상징성과 문화·예술·교육 분야 등에서 차지하는 가치가 위축되지 않도록 우표 사용을 늘려나가야 한다. 우체국에서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수요일을‘우표 사랑의 날’로 정했다. 10통 미만 일반통상 우편물에 대해서는 우편증지보다 우표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편사업의 원천인 우표의 정체성을 챙기고 우표를 통한 우정 문화도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우정사업본부는 「소녀 시대 나만의 우표」처럼 국민적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우표 소재를 개발하고, 디자인과 형태, 재질 등을 다양화하여 우표의 쓰임새가 많아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제 날씨가 더 추워진다. 금세 겨울이 올 것이다. 뭔가 그리운 심사가 가슴에서 토닥대는 당신이라면 눈이 내리는 겨울에 손 편지 한 통을 쓰자. 붉은 우체통에 넣어보자. 침 묻혀 가며 우표도 붙여서.

<태안우체국장 최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