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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해미국제성지의 시발점인 해미면 대곡리 공소 부지를 천주교 대전교구 유지재단에 이전하라
본사 편집부  |  7sky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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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1.12  06: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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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현(바르톨로메오, 현 홍북성당 소속)

해미면 대곡리 공소 교우촌은 1860∼1870년대부터 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 1890년대부터 양촌 성당(구합덕성당) 귀틀리에 신부가, 홍성 수곡성당 등에서 관리했고, 라리보, 폴리 신부 등도 관리했으며, 1930년대부터 서산성당, 1985년부터는 해미성당, 현재는 해미국제성지에서 관리하고 있다.

상속인중의 한명인 본인은 공소 부지를 찾아 이전하려 했으나 여러 조건 미비로 명의변경을 못해 해미국제성지에 증여증서를 쓰고 모든 것을 제공하며 마무리하려 했으나 아직도 조부 박병화명의이다.

1980년대 해미성당에서 여러 신부들이 교구로 이전하려 했으나 비영리단체에 전(田)이기에 이전을 못하고 1927년 조부님이 매입 때부터 타인 명의로 이전한 기간을 제외한 기간을 제외하고 2022년 현재까지 조부(박병화)님 명의다. 교회에 증여했기 때문이며 후손들도 구두로 교구에 증여함을 반기며, 흔쾌히 동의하고, 하느님의 땅으로 여기고 있다. 올해 서산시청에서 특조법으로 이전하려 했으나 이전을 못하고 아직도 조부 박병화 명의로 남아있어 안타깝다.

이에 본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행정적인 간편함으로 명의이전을 대전교구로 조속히 이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 1996. 11. 19 대곡리 공소 마당 성모상

1. 1927년 조부 박병화가 매입시부터 잠시 타인이 이전해 간 시기를 빼고 아직까지도 조부 명의이다. 명의 이전없이는 해미국제성지에 걸맞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

2. 소화 16년 1941년 조부 박병화 명의의 토지에 공소건물을 짓고 명의를 변경하지 않고 1943년경부터 교회부지로 사용하였다.

3. 증여의 근거는 동네 신자분들과 서산천주교회와 해미성당신부님들의 부동산현황 인계 인수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성당 소유의 부지라는 점이다.

4. 대법원 판결로도 대곡리 공소부지 773-1은 조부가 교회에 증여했으며 교회의 소유임을 밝힌바 있다.

5. 후손들도 대곡리 공소부지 773-1(63평)의 교회에 기증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6. 대곡리 공소는 천주교 대전교구가 설정한 7가지 순례길중 4가지가 대곡리 공소를 지나가고 있다. 또한 산림청에서 발표한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대곡리 공소를 지나가게 되어 있는 장소성과 역사성에서 중요한 지점이이다.

7. 대곡리 공소는 해미국제성지의 시발점이며, 해미에서 1935년 발굴한 생매장유해는 대곡리 공소에서 1박을 하고 상홍리 성당 인근으로 이동하였다.

8. 문제점으로 1941년 당시부터 공소건물이 무허가라는 점이다.

9. 제언하는 바는 건물을 문화재로 조성함과 동시에 부근을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여 여러 부대시설을 갖춘 장소로 조성하여 순례자들이 편안히 다녀갈 수 있는 장소로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 1996. 11. 19 대곡리 공소 내부 모습

오래전에 이미 증여했고, 교회건물용도로 80여년간 사용했고, 대법원 판결도 교회에 증여하여 교회소유라는 점을 판결문을 통해 밝혔고, 조부 박병화의 7남매의 자손 40여명도 이전에 대해 조건없이 구두로는 동의하였다.(행불자, 독일이민자 제외)

사실이 이러함에도 서산시에서는 아직도 이전을 못하고 있다. 무엇이 필요한가? 조속히 무슨 이유가 있는가 해결방법을 밝혀주기 바란다.

서산 동문동(예전 서산성당), 서산 석림리 성당, 해미성당등 전국에서 1400여명 공소 복원에 서명했고, 저는 초등학교에서 40여년 간 근무 후 퇴직했으며, 홍주성지에서 안내봉사자 역할을 하고 있다.

공소부지 773-1 옆에 771-1번지는 태안 거주 박원현이 대전교구유지재단에 증여 이전하였고, 공소건물은 771-1 및 773-1에 걸쳐져 건립되었다.

저의 조모는 황사영 알렉시오의 5대손이며, 박병화는 황사영의 5대손 사위이다. 저는 1953년생으로 대곡리 공소 출신이며, 고조모께서 증조부를 데리고 공주동학란을 피해 대곡리로 이주해왔다고 하며, 족보도 없었고, 고조부 윗대 조상묘도 없다. 고조부 성함도 정확하지 않다. 제가 목격한 오래전 화전을 일구었던 담장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상황은 몰래 숨어 다니다 보니 아무도 모르게 와서 거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저의 가족 오랜 천주 교회사를 엿 볼 수 있는 것은 1890년대 초 발간된 성경직해(최초의 한글 성경책, 민 아오스딩 감수)가 대대로 전해오다가 현재는 제가 보관하고 있으며, 전 9권중 2권은 홍주성역사관에 기증했고, 1부는 해미 형님이 보관하고, 6권만 제가 보관하고 있다.

대곡리 공소가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어 많은 순례객이 찾는 명소가 되기를 기원하며, 다시 한 번 서산시의 원만한 해결을 당부한다.

2022. 11. 11박정현(바르톨로메오, 현 홍북성당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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